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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을 건너, 같은 나이에 만난 증조할아버지

한국일보

고려인 4세 이리나 박은 낯선 기록 속에서 독립군이었던 증조할아버지를 만났어요. 그가 살았던 서른일곱, 지금 자신과 같은 나이였습니다.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는 고려인 4세 이리나 박(37)에게는 오래도록 몰랐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증조할아버지 박경환 씨가 독립군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최근에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이리나 씨는 러시아 공공보관소에서 박경환 씨의 자필 기록과 인사카드를 찾아냈어요. 기록에 따르면 박경환 씨는 1919년 만주에서 홍범도 유격대에 입대했고, 이듬해에는 김좌진, 홍범도 장군이 이끈 청산리 전투에도 참전했습니다.

이후 1930년대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정책으로 타지키스탄까지 떠밀려 간 그는, 그곳에서 어부와 노동자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고 해요. 독립군이었다는 이력은 오랫동안 가족들 사이에서도 잊혀 있었습니다.

2년 전 가족들은 마침내 박경환 씨의 무덤을 찾아 지금도 성묘를 이어가고 있어요. 증조할아버지가 청산리 벌판을 누비던 그때 나이와 꼭 같은 서른일곱, 이리나 씨는 90년의 시간을 건너 그와 마주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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